내동반자

오랫동안 함께 할 줄 알았던 반려동물의 죽음..

일랑하린 2023. 5. 7. 21:14
반응형

어릴적부터 부모님께서 많은 동물을 키웠었고,

그래서 나 또한 어릴적부터 많은 동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보냈었다.

어릴때는 잘 몰랐다. 나는 그저 예뻐만 해주고 보살핌이라는것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인것도 있고,

죽음을 눈앞에서 본적이 없기 때문에 슬퍼했던적도 없었던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몰랐는데 좀 크고나니 허전한 감이 있어 길고양이 입양처를 구하는 글을 보고 입양을 했다.

그러다  한달밖에 안된 구조된 고양이를 보고 또 내가 키우겠다 해서 두마리가 되었다.

어쩌다가 케터리 제안을 받고 먼치킨 남자아이와 렉돌 여자아이를 데리고 오게되었는데.

그 해 말에 케터리 제안한 곳에서 렉돌남자아이를 하나 더 데리고 왔는데

렉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서 4마리 아이가 태어났다.

사실상 이렇게 반려동물의 아이를 받아보는건 처음이였다.

고양이들은 경계심으로 인해 사람이 손에 닿는것도 싫어하고 다른 고양이들도 격리시켜야 한다 했는데.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있는데서 내 도움을 받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순하디 순한 착한 고양이들이였다. 털도 안보이던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걸 지켜보고,

엄마고양님이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다른 고양이들도 아이들 그루밍을 해주면서,

서로 도와가면 아이들을 키웠다. 이때부터였던것 같다. 케터리는 못할 짓인것이라는걸 느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케터리를 요청했던 곳으로 갈 아이들이였다.

나도 아이 엄마다보니 한동안은 거절했다. 그 마음이 아플것 같아서였기 때문이였다.

그분께서 아이들 사료까지 지원해주겠다 하셨고, 사실 한부모인데다 양육비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이셋을 혼자 키우기에 돈이 먼저 앞섰던것 같다. 아이를 돌보는 우리 아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그때 더이상은 하지말아야겠다 결심을 하게되었다.

4마리 아이들이 두달이 되지 않았을 쯔음에 케터리요청하신 분이 데려가셨는데,

한 아이가 상태가 안좋으시다며 엄마에게 보내서 케어요청을 하셨었다.

모든 아이들을 잃고 허망했을 우리 아이한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집에와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약도 먹이고, 정말 열심히 케어했다.

이 아이는 그냥 내가 키워야겠다 생각하면서 정말 열심히 돌보았었다.

잘자고, 잘먹고, 잘 매달리고 켓타워에도 벽타고 올라갈 정도로 너무 너무 건강하게 잘 지내줬다.

그렇게 약을 먹고  또 약을 먹고 했는데도 숨쉬는것을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아주는 아이니 잘 견디고 잘 이겨내고 잘 살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고양이별로 보내기전날 우리 아이셋을 할아버지집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을 둘러보는데 아기고양이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였다.

그날밤 혹시나 잘못될까 아이를 옆에 데리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 결국 고양이별로 가버렸다.

슬플시간도 없이 그 상황에서 나는 출근준비를 해야했고,  그날 일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아기 고양이가 떠나기 몇달전 처음에 데리고 왔던 먼치킨 남자아이가 먼저 별나라로 갔었다.

워낙 털도 누렇다보니 잘 몰랐다. 눈또한 노란색 눈이라 더 몰랐다.

 아이가 급격히 말라가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귀안을 보니 황달이 올라와있었다.

타우린이란 처방받아 아이 케어를 했었는데 상태가 더 안좋아져 다음날 쉬는날이라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한번더 가야겠다 싶었는데. 아침에 쇼파에 누워있는 아이가 이상했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좀전에 올라와서 누워있는건데요" 라는 말을 한다.

밥그릇에 밥도 먹고 화장실에  볼일까지 다 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쳐져있었다.

우리 아이는 서서 응아도 보는 독특한 아이였다. 새 모래를 부어주면 신이나서 모래에서 뒹굴며 놀기도 하고,

고양이친구들보다 사람을 더욱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사람옆에서 잠자는것을 좋아하는 그런 녀석이였다.

우리 아이 이름은 난이였다 못난이.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였다. 

아이의 상태를 보니 얼마 남지 않은것이 보였다. 아마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쇼파에 올라 아이들옆에 누워있었던것 같다.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우리 난이는 내품에 안겨서 별나라로 갔었다.

나는 죽은것을 무서워한다. 시체, 사체 라는 것 자체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을때도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장례를 치룰때 마지막 모습 보라할때도..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싸늘하게 굳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안으면서 펑펑울었다. 엄마를 보냈던 그날처럼 많이 울었다.

 

마지막 난이의 모습이다. 아이를 잊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모습도 남겨두었다.

아이를 보낸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내 컴퓨터 바탕화면은 우리 난이의 모습으로 해놓았다.

한번씩 난이가 그리워서 우는 나를 발견한다.

나에게는 아직 4마리의 고양이들이 있다. 벌써 5살 4살 3살.. 

그래서 더욱더 아이들의 건강에 나는 집착이 되는것 같다. 그래서 동물복지학과에 들어갔고, 반려동물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이 고양이별로 떠날때 나는 행복했던 고양이였어 라는 생각으로 떠나길 바라며,

더욱더 잘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케터리를 하지 않는다. 더이상 생명을 돈으로 만들기 싫다.

그 제안을 받았던 내가 너무 어리석고 밉다. 후회가 된다.

별이된 우리 난이, 아기 (이름이 진짜 아기다) 그리고 내 곁에 남아준 쁘니, 구름, 딱딱, 꼬미 사랑해.

728x90